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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정보

2022년 제13호 태풍 므르복 - 비둘기 부족이 살던 곳?

by 당위정 2022.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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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제9호 태풍 망온, 제10호 태풍 도카게, 제11호 태풍 힌남노, 제12호 태풍 무이파에 이어, 제13호 태풍 '므르복(MERBOK)' 이름의 뜻과 숨은 의미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사실 이 글을 작성해둔지는 좀 되었습니다. 태풍 힌남노, 무이파 이름을 해석한 글을 나무위키 등에서 며칠 시간차를 두고 출처 표시 없이 퍼가는 것을 보고, 이 글 역시 일찍 공개하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 같아 태풍 생성이 임박한 시점에 공개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퍼가는 것은 자유입니다. 단, URL을 포함하여 출처를 반드시 명시해주세요!

'므르복'은 2000년 말레이시아에서 태풍위원회에 제출한 이름입니다. '무이파'를 네이버에 검색해보면 다음과 같은 위키백과와 나무위키 설명이 나옵니다. 아예 박제를 해두기 위해 스크린샷을 올려요. ^ㅅ^;;

 

네이버 검색 결과

 

모두들 비둘기의 한 종류라고 설명하고 있는데요. 저런 설명을 읽으면 마치 우리 나라가 태풍 이름으로 '매미', '메기', '노루' 등을 제출한 것처럼, 말레이사아도 자기 나라에서 자생하는 생물 종(種) 중 조류 하나를 태풍 이름으로 제출했구나 하고 생각하고 넘어가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태풍 이름 '므르복'은 '새'가 아니라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므르복'이 지역 이름이라고?


위 건물은 말레이시아의 한 건물 입구인데요. 오른쪽 아래의 간판에 적힌 SMK는 'Sekolah Menengah Kebangsaan'의 줄임말로서 '중고등학교' 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SMK MERBOK은 '므르복 중고등학교' 라고 해석할 수 있겠네요. 아니,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비둘기를 얼마나 좋아하길래 학교 이름에까지 '므르복(비둘기)' 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건가요?

 

그 이유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특별히 비둘기를 아끼고 좋아해서가 아니라, 저 학교가 있는 지역 이름이 '므르복'이기 때문입니다.

 

 

말레이시아는 '술탄'이 통치하는 14개 주의 연합/연방 국가입니다. 그리고 주는 '구'로 나뉘어지고, '구'는 다시 '하위 구'로 세분화됩니다. '므르복' 지역이 속한 위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말레이시아 국가 > 케다(Kedah) 주 > 쿠알라 무다(Kuala Muda) 구 > 므르복(Merbok) 하위 구

 

이해하기 쉽게 우리 나라로 비교하자면, 대한민국 > 경기도 > 수원시 > 팔달구 정도 되겠네요. 그러니까 '므르복'은 우리나라의 '구(區)' 정도의 규모를 가진 말레이시아 지역 이름입니다. 그래서 므르복이라는 이름의 학교 이름도 있는 거구요. 비둘기가 좋아서 저런 이름을 딴 게 절대 아닙니다. ^ㅅ^;;;

 

쿠알라 무다 구의 행정구역도. 왼쪽 중앙에 므르복 하위 구가 보입니다.

* 위 이미지 출처 : By Zh9567 - Karya sendiri, CC BY-SA 4.0

 

 

 


 이 지역 이름이 태풍 이름으로 제출될만한 가치가 있는가?


우리 나라의 '구(區)' 정도의 규모밖에 되지 않는 '므르복'이 태풍 이름으로까지 제출된 것은 역사적인 배경 때문입니다. 아래 지도를 보시면 행정구역 상의 므르복 지역(A)과 동떨어진 아래 쪽에 므르복 강(Merbok River = 말레이어로 Sungai(江) Merbok)이 보입니다(B). 강이 위치한 곳은 '므르복' 하위 구가 아니라 '부장(Bujang)' 하위 구입니다. 행정구역을 나누면서 분할된 지역별로 이름을 붙이다 보니,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중요한 지명을 하위 구 이름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실제 지역 이름과 행정구역명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게 된 겁니다.

 

말레이시아 므르복 지역

 

실제로 므르복 지역은 므르복 강 위쪽이 아니라 므르복 강을 중앙으로 하는 훨씬 넓은 영역을 부르는 말입니다. 그래서 므르복 하위 구와 많이 떨어져 있는 므르복 강 상류 지역의 도심에서도 '므르복'이라는 이름을 흔하게 사용합니다(C). 그리고 행정구역 상으로 므르복 강이 흐르고 있는 곳은 '부장' 하위 구이지만, 실제 '부장' 지역은 훨씬 북쪽(D)입니다.

 

므르복 지역의 역사는 무려 기원전 5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므르복 지역은 말레이시아 케다 왕국의 주요 무역항이었습니다. 페르시아와 중국 간 향신료 운송을 위한 최적의 해상무역로는 말레이시아 반도의 말라카 해협을 통과하게 되는데, 므르복은 이 말라카 해협 초입에 위치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인도를 출발한 배들이 가장 빨리 도착할 수 있는 항구도시였습니다. 

 

말레이시아 므르복 지역 앞바다(오른쪽 아래의 빨간 색 원)를 지나가는 페르시아-중국 간 해상무역로

* 위 이미지 출처 : By Agarwal.tv - "Ancient Maritime Route"

 

그런데 최근에는 므르복 지역이 무역항 역할 외에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2009년 고고학자들이 므르복 강의 지류 중 하나인 바투 강 일대(E)에서 대규모 철 제련소의 흔적을 발굴해냈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야자 농장으로 사용된 땅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철을 제련하는 시설이 있으리라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점토로 된 용광로를 포함하여 송풍구, 철 제련 과정에서 발생한 슬러지(금속 찌꺼기)가 무수히 발견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므르복 지역에 최소 30 곳 이상의 대규모 제련소가 운영 중이었다고 추정하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제련된 철을 이용하여 므르복 지역에서 무기나 농기구가 직접 생산된 흔적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므르복이 우리 나라 포항의 포스코처럼 철 원료의 생산 및 공급 기지로의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합니다. 아시다시피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가면서 군대를 위한 무기, 농부를 위한 도구, 사원 등 건축을 위한 자재 등 무수히 많은 용도에 철은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었습니다. 철을 제련하고 가공하는 기술은 술탄의 권력을 강화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지금도 므르복 지역 일대의 고고학적 가치는 계속하여 재평가 되고 있으며, 발굴 작업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는 말레이시아 국제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로 쿠알라룸푸르가 가장 유명하지만, 고대 말레이시아 부족국가 시대에는 아마 므르복이 국제적으로 가장 유명한 도시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그런데 므르복 지역의 이름은 왜 '므르복'이 된 거지?  


그러면 역사가 철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므르복' 지역은 왜 이름이 '므르복'이 되었을까요? 

 

'므르복'이라는 단어 자체는 '얼룩무늬 비둘기'를 가리킵니다. 나무위키에서는 '점박이 목 비둘기'라고 적혀 있지만, 점 보다는 얼룩말처럼 긴 무늬에 가깝다고들 이야기 하고 있으며 그래서 영어로는 Zebra Dove  '얼룩말 비둘기' 내지 '얼룩무늬 비둘기' 라고 부릅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면 '점박이 목 비둘기' 보다 '얼룩무늬 비둘기'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다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얼룩말 비둘기(Zebra Dove)

* 위 사진의 출처 : eBird

 

 

앞에서 설명드렸던 므르복의 오랜 역사를 보면 이 새를 '므르복'이라고 부른 것도 최소 철기 시대 이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레이語(어)로 '므르복(Merbok)'에 '얼룩무늬' 혹은 '얼룩말' 같은 뜻이 담겨 있는 건 아닙니다. 이 새를 '므르복'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이 새의 '소리' 때문인데요. 정말 '므르복'이라는 소리를 낼까요?

 

므르복이 우는 소리

 

고대 말레이인들은 이 새가 '므르르르 복 복 복 복 복.... 므르르르 복 복 복 복 복.....' 하고 운다고 해서 이름을 '므르복'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버꾸기가 '버꾹 버꾹' 운다고 이름을 '버꾸기'라고 지은 것과 같은 얘기죠. 하지만 므르복이 유독 므르복 지역에서만 사는 조류는 아닙니다. 말레이시아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등 동남 아시아 전역에 자생하고 있는 흔하디 흔한 새죠. 그런데 왜 하필 이 새 이름을 지역 이름으로 불렀을까요?

 

고고학자들은 부족명으로 부르던 이름이 지역명으로 굳어졌을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말레이 반도 주민들은 부족명을 주로 동물의 이름으로부터 따 오는 경우가 흔했다고 합니다. 므르복 인근에 위치한 '부장 구(區)'의 '부장(Bujang)'은 산스크리트語(어)로 '뱀'을 의미하며, 이 지역이 고대에 뱀을 상징으로 사용한 부족이 살았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므르복은 역시 이 지역에 흔했던 '얼룩무늬 비둘기'를 부족명으로 사용했던 것이 지역명으로 고착화되었을 것으로 고고학자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요약


지금까지 말레이시아가 제출한 태풍 이름 '므르복'의 숨겨진 의미를 살펴보았는데요. 긴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므르복은 기원전 철기시대 제련산업과 무역항으로 유명했던 말레이시아의 한 지역명을 뜻합니다.
  2. 고대에 이 지역에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족의 이름 '므르복'이 지역명으로 굳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3. 원래 '므르복'은 새 소리를 따서 지은 붙여진 새의 이름입니다.  

 

지금은 창원으로 통합된 '마산(馬山)'이라는 시(市)가 있었죠. 만약 우리 나라가 말레이시아처럼 지역 이름을 태풍으로 제출하게 되어서 '마산'이 태풍 이름이 되었다고 가정해보죠. 해외 네티즌들이 한국이 제출한 태풍 이름 '마산'의 뜻을 풀이하면서 "마산은 한국에서 제출한 이름으로서, 말의 산을 의미한다' 라고 하면 얼마나 수박 겉핥기가 되겠습니까. 한국이 마산이라는 도시를 왜 태풍 이름으로 제출했는지, 마산의 위치와 역사.... 이런 걸 설명해야 맞는 거죠.

 

므르복에 대한 기존 인터넷 자료들이 너무 단편적인 부분만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다른 태풍 이름들도 무슨 뜻인지 궁금하신가요?

 

 

 

태풍의 이름과 뜻, 총정리

태풍 이름은 2000년부터 태풍위원회 회원국별로 10개씩 제출한 총 140개가 각 조 28개씩 5개조로 구성되고, 1조부터 5조까지 순차적으로 사용합니다. 140개를 모두 사용하고 나면 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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