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이태원의 비극
이태원에서 발생한 비극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1997년 4월 3일 밤 10시, 홍익대학교 학생이던 조중필 씨는 여자친구와 함께 버거킹 매장을 찾았습니다. 여자친구가 주문을 하는 사이, 조중필 씨는 화장실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누군가에게 칼에 찔려 잔혹하게 살해 당합니다.
용의자로 지목된 한국계 미국인 2명, 존 패터슨과 에드워드 리는 곧 검거되었지만 둘 사람은 서로를 주범으로 지목했습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수집된 증거와 다수의 증인에 따르면 존 패터슨이 주범이었고, 그를 살인죄로 기소해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아무런 합리적인 근거없이 존 패터슨이 아닌 에드워드 리를 주범으로 몰아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담당 박재오 검사는 근거없는 범죄심리학 이론을 내세우거나 취조과정에서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등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면서 끝끝내 에드워드 리를 주범으로 기소하고 맙니다. 대법원까지 간 재판에서 결국 에드워드 리는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고 조중필 씨를 살해한 죄로 처벌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애드워드 리의 무죄 판결 후 검찰은 존 패터슨을 주범으로 기소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지만, 또다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검찰이 출국금지 연장을 미루던 중에 수사 중이던 존 패터슨이 미국으로 도주해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2008년까지 검찰과 정부는 존 패터슨을 국내로 송환하여 살인죄로 재판을 받게 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유족들이 진정 원했던 것
이태원 번화한 거리에서 아들이 아무런 이유없이 비극적인 죽음을 당했지만, 검찰의 어처구니 없는 판단과 실수로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은 상황 앞에서, 조중필 씨의 유족은 어떤 심경이었을까요? 그리고 그들을 위해 동시대를 살아가던 이웃들이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그 대상이 검찰이든 존 패터슨이든, 다른 이를 비난하지 말고 그저 피해자와 유족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게 가장 우선입니까? 잘못한 이들을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까? 비난할 때가 아닙니까? 조중필 씨의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슈화시켜도 안 됩니까? 오직 피해자와 유족의 치유와 회복에만 집중해야 합니까? 그것이 진정 피해자와 유족을 위하는 최선의 방법입니까?
저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유족이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누가 피해자를 죽였는가? 왜 피해자가 죽어야 했는가? 를 밝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 것입니다. 그게 피해자와 유족이 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이태원 살인 사건에서 유족은 존 패터슨이 처벌을 받도록 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런 노력 끝에 2009년 검찰은 미 법무부에 존 패터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하게 되었고, 2011년 미국 LA에서 체포된 존 패터슨은 2015년 국내로 송환되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 대법원은 "패터슨이 피해자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음이 의심할 여지 없이 충분히 증명됐다"고 밝히며 최종 유죄 판결을 내립니다.
위로와 치유?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잘못이 가려져서 죄를 지은 사람이 처벌을 받고, 잘못된 점이 있다면 그것을 고쳐서 그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 없이 위로와 치유만 한다는 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주장인가요?
비난하지 말아야 할 것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는 이해합니다. 바로 피해자에 대한 비난에 한해서입니다. 우리는 대형 참사의 피해자들을 손가락질하며 비난하는 소시오패스들을 이미 많이 보아왔습니다. 승객 300여명이 해경과 구조선들에 둘러싸여 산 채로 바다에 수장되는 모습이 방송사 카메라로 전국에 실시간 생중계 된 참사를 놓고 그냥 교통사고일 뿐인데 왜 호들갑 떠냐고 말한 이가 있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를 '놀러가다 죽은 사람들'이라고 폄하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쓰나미로 인해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서 수십만 명의 사망자가 나온 인류적 참사를 놓고도 그저 '하나님의 심판'이라며, 하나님을 믿지 않은 피해자들의 잘못이라 비난했던 자도 있었습니다.
이런 소시오패스들이 있기에 "왜 이태원에 그렇게들 놀러가서 그런 사고를 당하냐" 라는 식으로 피해자를 비난하는 언행은 삼가자는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를 조장하거나 방치한 사람과 시스템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채, 위로와 치유'만'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국민 안전을 위해 작동해야 했던 공공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미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사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유감이다', '송구하다' 등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와 같은 군중 밀집 참사에서) 경찰은 지휘 책임이 없다"거나 "경찰을 배치했어도 참사를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등의 발언을 하면서 국가의 완전 무책임을 주장했습니다. 이전 구청장은 직접 주재했던 할로윈 행사 안전대책회의를,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부구청장에게 떠넘기고 관내 행사 홍보에만 관심을 쏟았습니다. 시민 안전을 위해 용산경찰서와 소방서와 사전 협의하는 과정은 아예 생략되었습니다. 용산구 공무원들은 참사가 벌어지던 시각에 '무질서한 시민의식'과 '고생하는 공무원'을 주제로 이태원 일대에 대한 방송사 현장 취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경찰은 시민 안전을 위해 인력을 더 투입하기는 커녕, 이태원 일대에 대한 대대적인 마약 단속을 벌일 참이었구요.
애도만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
대한민국 수도 서울, 가장 번화한 도심 중 하나에서, 게다가 대통령실이 소재한 관할 구 안에서, 어떻게 이렇게 총체적인 난국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복합적인 원인으로 인하여,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평범한 주말 일상을 즐기던 젊은이 150명이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맞았습니다. 국가는 신속하게 국가적 '애도' 기간을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가족은 정말 애도'만'을 원할까요?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왜 내 아들이, 내 딸이, 내 형제자매가 이렇게 어이없고 허망하게 죽음을 맞아야만 했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입니다. 그들을 바라보며 함께 애도하는 국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답을 찾지 않는다면, 그들도 가장 평범한 일상 속에서 언제 그와 같은 죽음을 맞을수도 있다는 얘기니까요.
애도해야 됩니다. 위로해야 됩니다. 치유해야 됩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반드시 이어야야 할 것은 분노입니다. 이태원 참사와 희생자들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이 누구인지, 왜 공공 안전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는지, 당시에 취하진 조치들이 정말 최선이었는지, 반드시 가려져야 합니다. 이를 회피하거나 무마하려는 모든 생각과 시도들에 대하여 국민 모두가 분노해야 하며, 때문에 더더욱 정치적으로 이슈화 되어야 합니다. 애도'만' 하자, 위로와 치유'만'하자라는 목소리를 듣고 좋아할 사람은 정작 유족들이 아니라, 비극과 참사를 일으킨 범인들밖에 없습니다.
'생각하는 글 > 일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했제와 그랬제가 왜 욕을먹는지 아십니까? (0) | 2024.07.27 |
---|---|
윤석열이 지키겠다던 자유 대한민국? (0) | 2022.10.06 |
공업용 본드 덩어리의 꿈 (0) | 2022.08.14 |
겉 멋만 든 작가들, 과대포장된 베스트셀러 (0) | 2022.08.07 |
한미 통화 스와프 추진 실패에 대한 거짓말 (0) | 2022.08.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