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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글/일반

공업용 본드 덩어리의 꿈

by 당위정 2022.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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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에서 보이는 조금 엉성해 보이는 인형은 공업용 본드가 흐르며 굳은 덩어리와 철사를 이용해 만든 작품입니다. 2000년대 초 '12500원'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박종필 님은 자신이 많은 이 작품에 '쭈루'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는 기름때 가득한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짬이 날 때마다 몰래 몰래 쭈루를 만들며 힘든 생활의 위안을 삼았다고 합니다. 그림의 맨 아래, 쭈루의 크기를 비교하려 함께 찍은 박종필 님의 손은 전형적인 공장 노동자의 손가락입니다.

'12500원'이라는 독특한 아이디에 대해서는 그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어릴적부터 집이 가난해서 돈을 벌면서 중고등학교를 나왔더랬죠. 학교도 꼬박 잘 나가지 못했구요. 그래서 사회생활을 일찍했구요. 덕분에 사회에 대한 두려움을 일찍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3년 전에 주머니에 12,500원을 전재산으로 서울로 상경했어요. 말도 안되는 금액이지만 그걸로 기차표만 마련할 수 있다면 성공할 열정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2천만원 가까이 되는 통장도 만들었구요. 주말마다 서울에 있는 자그마한 실기실에 나가서 그림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공장노동자에게도 꿈은 있습니다. 노동에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도 스케치를 하고 시커먼 손가락을 들어 유화를 그린다고 합니다. 그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방법이지요.

 

20여년이 지난 지금, 박종필 님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꿈을 이루었을까요? 아니면 이 땅 어디에선가 또 다른 꿈을 만들어 가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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