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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글/일반

코로나는 지구의 자정작용일 수도 있다.

by 당위정 2021.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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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당신은 과학자입니다. 1 알만 먹으면 노화되지 않고 1,000 년을 살 수 있는 신약을 개발합니다. 이 사실을 아직 당신밖에 모릅니다. 당신은 이 약으로 돈을 벌 수 없으며, 공개의 범위를 한정할 수 없다(예 : 당신 혼자 혹은 가족만 먹는다든지...)고 전제할 때, 그렇다면 당신은 이 신약을 세상에 공개하겠습니까? 아니면 폐기하겠습니까?

 

얼핏 생각하면 늙지 않고 1,000 년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이상적으로 들립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엘프들과 같이 불로장생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지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것은 재앙과도 같은 일입니다. 단순히 계산해도 지금보다 수명이 10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는 것은 지구상의 인구는 70억 명 이상으로 증가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지구 상의 자원을 소진하는 속도도 10배 이상 빨리지겠지요. 1,000 년을 더 살게 된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환경파괴와 자원고갈로 인류가 멸종을 맞이할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입니다.

 

인류의 생존시계는 얼마 남지 않았으며, 공유지의 비극은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남이 더 쓰기 전에 내가 더 많이 쓰기 위한 집단적 자살행위가 지구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범국가적인 합의와 결단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노화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냐 거부하느냐와 같은 의지의 영역과 무관하게 자연의 기본적인 이치입니다. 생명체가 한살이를 마치고 죽으면 부패하여 자연을 구성하는 원소들의 일부가 되고 그 원소는 다시 새로운 생명체를 잉태하는 양분이 됩니다. 생명체가 너무 많으면 생존에 필요한 자원이 부족해지고 자연히 생명체의 숫자는 줄어듭니다. 생명체가 줄어든 자연은 다시금 생명체를 잉태할 수 있는 잠재력이 커지고 이를 바탕으로 생명체 숫자가 증가하게 됩니다.

 

자연의 먹이사슬에 따라 종과 종이 긴밀한 상호작용을 하면서 개체수가 조절이 되는 것처럼, 인류 역시 다양한 요인에 의해 개체수가 조절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류에게 위험이 되는 요소, 즉 질병, 기아, 재난과 같은 것들은 점차 통제 가능하게 되거나 감소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낳는 유일한 문제점은 지구상에 인류라는 개체수가 지나치게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관련 동영상을 하나 링크하고 말을 줄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19는 인류적 비극이자 재앙인 동시에, 지구적 축복이자 탁월한 자정작용일 수 있습니다. 개체수를 줄임으로써 자원 소모 속도를 완환시키고 지구의 종말 시계를 뒤로 미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백신을 접종한다든지 치료제를 사용함으로써 사망자를 줄이는 노력은 '지구'의 입장에서 무분별한 방해 활동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가능한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숭고한 노력이라고 하지만, 그 숭고한 노력이 멀지 않은 미래에 더 많은 인류의 죽음 내지 전인류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느 시점에서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수백 명의 승객을 살리기 위해 아들을 희생한 아버지의 예화처럼, 당장의 비통함을 뒤로 하고 우리가 정말로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영화 딥임팩트에서는 피할 수 없는 소행성의 충돌과 지구 종말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100만 명의 인류를 선발하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20만 명은 인류 생존에 필수적인 과학자, 의학자 등으로 구성되며 80만 명은 일반 시민들로 추첨이 되는데, 흥미로운 것은 추첨 대상에서 50세 이상의 시민은 제외가 된다는 것입니다. 한정된 수용인원을 고려할 때 가장 건강한 상태로 장기간 인류 재건에 기여할 수 있는 대상만 선발하겠다는 지극히 공리주의적인 발상입니다. 위기 상황에서 당연한 선택이고 어쩔 수 없는 결단이기도 하죠.

 

 

 

코로나19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의 치사율은 사실 높은 편이 아니며, 노령층과 기저질환자를 제외하면 치사율은 매우 낮은 편입니다. 치명적인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백신을 수 차례 접종하고, 매일 언제 어디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전 국가적인 노력은 어떻게 보면 건강하고 젊은 집단이 건강하지 못한 고연령층을 필사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것이라 해석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코로나 위중증 환자의 82%가 60대 이상이라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만약 백신접종이 집단면역 형성과 포스트 코로나를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다면 모르겠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백신을 맞은 사람도 코로나에 쉽게 감염되고 있고 정부 당국자들은 위중증은 비율을 낮춰준다는 궁색한 변명을 합니다. 많은 감염병 전문가들이 제시한 백신 접종완료율 70~80%에 도달한 유럽 국가들이 위드 코로나를 선언하고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결국 감염자 확산과 위중증 환자 급증으로 또다시 봉쇄 정책으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백신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결국 스페인 독감의 교훈을 떠올리게 됩니다.

 

스페인 독감에 1918~1919년에 대유행하여 1,700~5,000만 명이 사망한 팬데믹입니다. 특이한 건, 당시에는 지금과 같이 의학이 발전하지도 백신이 나온 것도 아닌데 1920년에 별안간 종식이 되어버린 겁니다.

스페인 독감의 종식 이유에 대해선 아직도 학자들간에 의견이 부분합니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감염될 만한 사람들은 모두 감염되었고, 죽을 사람은 모두 죽었으며, 살아 남은 사람들은 면역력이 생겼다." 라는 설입니다.

 

 

 

위드 코로나 시대(코로나 일상), 우리의 실제 생활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

'위드 코로나(With COVID19 Pandemic)'란? 코로나19(COVID19) 바이러스를 퇴치, 종식, 극복하거나 극복하기 위한 단기적인 계획을 포기하고, 중장기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유지될 것을 전제하면서 팬데믹

miniweb.kr

 

화이자 백신 접종 성공률이 80%에 육박하는 싱가포르에서 일 확진자가 수천 명(인구 비율로 따지면 우리나라의 수만 명에 해당)에 달한다는 소식은, 스페인 독감과 마찬가지로 코로나 역시 감염과 면역에 의한 전인류적인 면역체계 업그레이드를 통해서만이 해결될 수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무병장수하는 것이 인류의 관점에서는 희소식이지만 지구의 관점에서는 재앙이듯이, 공리주의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방향의 사회적/지구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당연히 PC주의자들은 이에 반대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하겠죠. "네 부모가 코로나 때문에 죽게 되어도 좋단 말이냐?"

 

물론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정책이나 코로나 같은 인류적 결단이 필요한 사안에서 개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른 요구사항을 반영하는 것은 독약과도 같습니다. 아이언맨3를 보면, 미국 부통령이 자신의 딸의 신체장애를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 암살을 묵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부통령조차도 사사로운 감정과 인정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 감정과 인정을 고려하면 안되는 것이죠. 설령 제가 그 입장이 되더라도 말입니다. 아무리 내 아들이 소중하다 하더라도 사회적 결단은 기차에 탄 수백 명의 승객을 살리는 쪽으로 내려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역사에는 가정이 무의미하다고 합니다. 먼 미래에 2020년 전후의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기록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하지만 '사회적 약자가 죽어간다'는 잘 먹히는 레토릭 때문에, 우리가 고심 끝에 응당 내려야할 결단이 회피되어선 안될 것입니다. 코로나는 지구의 자정작용일 수 있으며 그렇다면 인류가 지구의 주인공이기에 절대 무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해선 안된다는 착각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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