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한 찜질방(업체명 Wi SPA)에서
'생물학적 남성'이 여탕에 들어가 활보한 사건이
미국 전역에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사건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생물학적 남성인 한 고객이 "나는 여성"이라고 밝히고
여탕을 이용하겠다고 함
2. 종업원이 여탕을 이용하도록 함.
3. 이 남성은 여탕을 활보함.
4. 여성 고객들은 성적 수치심을 느끼고
"왜 여탕에서 남성이 벌거벗고 다니도록 허용하느냐"며 거세게 항의.
이런 사건이 발생한 건
캘리포니아주의 '운루 민권법' 때문입니다.
하원의장을 지낸 제시 운루 의원이 통과시킨 법인데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모든 사업장에서
성(性), 성 정체성, 인종, 피부색, 종교, 혈통, 국적, 장애, 언어, 체류 신분
등의 이유로 차별하는 걸 금지한다는 내용입니다.
운루민권법에 따르면
생물학적인 성과 다르게 스스로를 인식하는 경우,
즉, 이번 사건처럼 생물학적 남성인 고객이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밝힌다면
그 사유로 차별해선 안 되죠.
처벌도 어마무시해서...
피해자는 자신이 입은 피해액의 3배까지 배상받을 수 있는데
피해 입증이 안되더라도(=입증책임 전가)
최소 배상 금액으로 4,000달러(480만 원)이
정해져 있습니다.
문제는 성 정체성이 정말 그러한지를
사업장 직원이 검증할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오직 당사자의 일관된 주장과 진술만 가지고
판단해야 하죠.
아니, 판단 자체를 하지 말라는 겁니다.
잘못 판단했다가는 4,000 달러를 보상해야 하니까요.
웃긴 것은
이 문제의 남성은 이미 성 범죄(노출증)로
기소가 된 상태였습니다.
찜질방 내 다른 고객들의 증언을 감안해도
성 정체성이 여성이라는 그의 주장은
허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직원이 이것을 알아낼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찜질방에서 전과 조회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이 사건 때문에
당사자 주장만으로 생물학적 남성(여성)을
여성(남성)으로 인정한다는 게 말이 되냐는 측과
성 정체성으로 차별을 하지 말라는 측이 뒤섞여 시위를 벌이고
충돌이 벌어지는 사건까지 발생합니다.
PC에 대하여
(Politcal Correctness)
이 사건은 PC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끔 합니다.
PC의 뜻을 쉽게 설명하자면
어떤 개개인인나 집단의 이익과 무관하게
정의와 당위의 관점에서 우리가 선택하고 지향해야할
올바른 가치를 말합니다.
우리 모두 지치고 힘든 퇴근 길이지만
노약자석이나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둡니다.
우리 동네에 장애인복지센터가 들어서면
땅값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복지를 위해 이를 반대하지 않거나
오히려 이를 지지합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PC입니다.
PC는 자신의 눈앞의 이익을 마다하고
올바른 가치를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정의롭고 고상한 것으로 인식이 됩니다.
하지만
PC의 강요는 또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당신은 여자입니다.
수영장 탈의실에서 몸을 씻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당신 눈앞에
남자가 나타나 당신의 몸을 보고 있습니다.
당신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손으로 몸의 일부를 급히 가리고
비명을 지릅니다.
그때 그 남자가 말합니다.
"저는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지만
저의 성 정체성은 여성입니다.
그러니 저를 여성으로 인식해주세요."
그러면 당신은
"아, 그렇군요!
제가 오해했었네요."
하면서 몸을 가렸던 손을 내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 사람 옆에서 다시 샤워를 하실 수 있나요?
만약 당신이 경계심을 풀지 않고
계속 불안해 하면서
몸을 가린다면
그 남성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지금 제 겉 모습만 가지고
저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이건 명백히 성 정체성을 가지고 차별하는 겁니다!!!"
그 옆에 있던 다른 여성이
한 마디 거릅니다.
"성 정체성을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아요! 부끄러운 줄 아세요!!"
이런 에피소드는
소위 PC 근본주의자(라고 적고 'PC충'이라고 읽습니다)들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나타내 줍니다.
그들은 '올바른 가치와 당위에 대한 판단'과
'현상의 인식에 대한 통념적 반응'을
전혀 구분하지 않습니다.
친구 한 명을 사귀더라도
여러 번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열어가는게 당연한 건데
PC 근본주의자들은
"친구에겐 마음을 열어야지!"라는 당위를 수립한 후
첫 만남에서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모든 사람을 '쓰레기'로 치부하죠.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PC 근본주의자들의 이런 모습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연상케 합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신화에 따르면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아
자신의 침대에 누이고는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그만큼 잘라내고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억지로 침대 길이에 맞추어
늘여서 죽였다고 하죠.
PC 근본주의자들이 바로 그렇습니다.
자신들이 설정한 가치와 당위에 절대적이고도
즉각적으로 동의하고 동참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을 '쓰레기'로 치부합니다.
그 가치와 당위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번 로스앤젤레스 찜질방 사태에서처럼
PC의 가치와 당위를 내세워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사례에 대해서도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문제의 남성은 그나마 성범죄자였기에
즉각적으로 이슈가 됐지만
그렇지 않다면 남성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여탕 출입은 계속되었을 겁니다.
그 와중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여탕 안의 여성들)만
쓰레기로 치부되었겠죠.
차별금지법
현재 입법 진행 중인 차별금지법도 결국
캘리포니아주의 운루 민권법과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전면적이고 절대적인 차별금지
피해 입증책임 전가
이런 문제가 있을 가능성 제기하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적절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제안은
구시대적이고 편협한 사고방식으로 쉽게 치부됩니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전면적인 찬성만이
새 시대 패러다임에 부합하는 Cool~한 결정이 되죠.
마지막으로
예화 하나만 더 적겠습니다.
맹견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맹견은 잘 훈련받은 개였기에
사람을 물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리 없고
설사 안다 하더라도
맹견의 위압적인 모습에 쉽게 겁을 먹었고
특이 아이들은 무서워서 우는 일도
많았습니다.
동네사람들은 맹견의 견주에게
사람들이 너무 무서워하니
외출할 때 입마개라도 씌웠으면 좋겠다고
건의했습니다.
그러자 견주가 크게 화를 냈습니다.
"우리 개는 안 문다니까요!
그리고 당신은 내 반려동물을 존중하지 않고 있어요.
당신의 발언은 내 반려견에 대한
정신적인 학대를 하고 있는 겁니다!"
개가 잘 훈련되었기 때문에
무서워 보이지만 나를 절대 물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다 맹견이 실제로
사람을 무는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특수하고 예외적인 상황이니
여전히 맹견이 자유롭게 동네를 돌아다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100% 배제할 수 없는 그런 가능성에 대해
적절한 예방 장치(입마개 등)를
요청하는 사람이나
개를 너무 무서워해서
맹견 앞을 피해다니는 사람들까지
모두 싸잡아서
'올바르지 못한 사람들'이라
폄하하고 조롱한다면
그건
Political Correctness가 아니라
올바름을 가장한 파시즘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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