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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글/일반

복제인간에게 희망을

by 당위정 2021.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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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 9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교회 또래 커뮤니티에서 복제인간에 대한 글이 몇 개 올라왔던 것이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다. 복제인간이라는 단어가 가진 묘한 분위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것에 대하여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복제인간에게도 영혼이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의견도 등장할 정도였으니....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 이미 '그건 아니다'라는 입장이 내려졌지만, 나중에 시간을 가지고 이 이슈를 찬찬히 바라보며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첫째가 복제인간의 실체에 대한 오해와, 둘째 그것을 반대하는 근거의 추상성이다.

흔히 '나'와 동일한 또 다른 개체가 존재하게 된다는 사실에 대해 극렬한 감정적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클론들은 이미 이땅에 널리 퍼져있지 않은가. 일란성 쌍둥이의 생물학적 골격이 무언가. 하나의 수정란이 배자상태에서 두 개(혹은 그 이상)로 분리되어 따로 성장한 것, 따라서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게 일란성 쌍둥이다. 일종의 자연적 복제인간인 셈인데, 무슨 문제 있는가? 여러 연구결과를 통해 일란성 쌍둥이가 일반인에 비해 높은 정도의 교감수준과 감정적 동화현상을 보여주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둘을 '같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엄연한 별개의 인격체에 별개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 복제인간이라고 해서 붕어빵 기계에서 찍어내듯이 생산해내는 것이 아니며 여성의 자궁을 빌어 출산되는 또 하나의 생명체다.

따라서 유전적 동일성을 이유로 해서 "복제인간에게 '영혼'이 있는가" 하는 문제 자체가 제기되는 것은 우습다.(엄밀히 말해, '혼'은 있으나 '영(생령)'은 없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편의상 '영혼'으로 통칭하도록 한다.) 나는 그런 일련의 주장들이 '복제'라는 단어적 한계에 갇힌 감정적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입장정리를 분명히 하자. 인공수정에 의한 불임시술과 그로 인한 임신, 그리고 출산한 아기에 대하여 어떻게 판단하는가? 그네들에 대해 영혼의 존재 유무를 논할 여지가 있는가? 복제인간이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을 가능성의 근거로, '수정란 탄생의 인위성'을 든다면 인공수정 역시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른 인간 본위의 생명 창조가 된다. 따라서, 미국에서만 연간 15~20만명의 인공수정 아기가 태어나고 있는 통계를 감안할 때, 우리는 이미 '영혼이 없을지도 모르는'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과 살아가고 있고, 그들 중 일부는 '영혼이 없음에도' 버젓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웃지 못할 현실 속에 있는 것이다. 이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특별히 '체외 인공수정'만을 문제 삼는다고 변명할지라도 개운치 않다. 정자를 채취, 배양하여 여성의 자궁에 주입하는 '체내 인공수정'과는 달리, '체외 인공수정'은 남성의 정자와 여성의 정자를 수정시킨 후 자궁에 착상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자궁 외에서 수정되는 것이 인위적이므로 하나님 섭리를 거론한다면, 성기 삽입에 의해 탄생하는 아기만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태어나는 생명체가 된다는 뜻인데 이건 너무 심했다. 보수 기독교의 주장에 따르자면 성범죄에 의한 임신도 어쨌건 삽입을 통한 결과물이므로 하나님의 섭리가 되어 기뻐하고 축복해야 할 일인데, 되려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서 태어났더라도 '사람의 손에 의해' 수정되었다는 이유로 '영혼이 없을 수도 있는' 아기가 되어버리는 건, 전혀 타당하지 않다.

그러므로 언급한 두 가지 논점(동일 유전자와 인위성 문제)에 대해 수긍한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복제인간 연구가 '수정란 클론'이 아닌 '체세포 클론'이라는 사실에 집중하더라도 복제인간의 영혼이 있니 없니 하는 논쟁 자체가 공허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제인간 연구는 중단 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연구 실무자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대단히 정의롭고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복제인간의 수요는 불임의 목적을 넘어선지 오래다. 성체(인간)의 노화와는 별도로 염색체 역시 노화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불임부부가 갖고자 하는 아기가 사실은 그들이 원하는 아기가 아닌 것이 판명된 이상, 막대한 연구비용을 지출하면서까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저의는 다른 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복제인간 연구가 '사육되는 인간'을 출현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나님의 고귀한 생명체가 하나의 '스패어(spare)'로 전락하는 현실은 우리 모두에게 경악할 만한 비극이다.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복제인간 연구 자체가 가진 몰인격성이다. 복제 동물 1마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난자 수백 개가 필요하며 수정을 시킨다 해도 제대로 세포 분열을 시작해 배아 단계로 들어가는 것은 수십 개에 불과하다. 자궁에 착상을 시킨다 해도 많은 수가 임신 기간 중에 유산되거나 사산되며 무사히 태어난다 해도 기형이 많다. 복제양 돌리는 똑같은 실험을 거친 난자 277개 중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경우다. 수정란 클론에서는 임신 기간 285일 중에서 약 100일이 지나면 출산까지 지속시킬 수 있다. 그러나 체세포 클론의 경우에는 150-200일이 지나도 유산을 한다. 더욱이 비록 태어난다 해도 짧은 시일 안에 죽어 버리는 예가 상당히 많다.

그러니까 복제동물을 만들기 위해 연구했을 때가 이렇다는 얘기다. 그러면 복제인간을 만들기 위해 죽어나가야 되는 수정란과 태아와 아기는 도대체 몇 개(?)인가? 관련 전문가인 영국의 윌머트 박사의 말을 빌자면, "배양이나 체세포 핵이식 등 생체 밖에서의 조작이 겹침으로써 염색체가 이상을 일으키거나, 유전자 발현에 결함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며, 지속적인 연구를 통한 원인 해명이 기대된다"고 하는데, 마치 자신의 작업을 약물의 임상실험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들에게 있어 '복제인간'이란, 실험실의 '몰모트'와 다를바 없어 보인다.

라엘리안 무브먼트의 깜짝쇼가 사실이었든 아니든, 종교적/윤리적 타당성 논의는 지지부진할 것이며 결국 복제인간은 탄생하고 말 것이다. 사람이 언제고 '할 수 있는 것'을 안 한 사례가 있었던가! 초기에 다수의 기형과 수명 결함을 가진 개체들이 태어날 것이고 형질이 보완되면서 그 숫자는 훨씬 많아질 것이다. 그네들에게 영혼의 유무를 물을 것인가? 복제연구에 반대하더라도 그 희생자인 복제인간들에게마저 등을 돌리지는 말아야 한다. 자기 스스로를 한 번 들여다 보라. 이유없는 반감은 교만이자 편견이다.

 

 

(이 글을 작성하고 2년 뒤인 2005년에 영화 '아일랜드'가 개봉되었다. 우려는 늘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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