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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글/일반

인터넷에 있는 말을 그대로 믿지 마라!

by 당위정 2021.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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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가 음란 이미지라고 해서 모자이크 처리합니다;;

노인과 여인 이야기

 

한 번은 보셨을 법도 한, 위의 그림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위 그림에 대한 사연은 자못 감동적입니다. 글을 옮겨보면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젊은 여인이 부끄럼도 없이 젖가슴을 드러내고 있고 거의 벗다싶이 한 노인이 젊은 여인의 젖을 빨고 있습니다. 루벤스(Rubens)의 작품이며, 제목은 'Cimon and Pero(키몬과 페로)' 입니다.

이 그림은 푸에르토리코 국립미술관 입구에 걸려 있습니다. 박물관에 들어서다가 이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대개 당황합니다. 딸 같은 여자와 놀아나는 노인의 부적절한 애정행각을 그린 작품이라면서 불쾌한 감정을 표출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이런 포르노같은 그림이 국립미술관의 벽면을 장식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미술관의 입구에...

그러나... 그 나라 국민들은 이 그림 앞에서 숙연해집니다. 눈물을 보이기도 합니다. 커다란 젖가슴을 고스란히 드러내 놓고 있는 저 여인은 노인의 딸입니다. 검은 수의를 입은 노인은 젊은 여인의 아버지입니다. 이 노인은 푸에르토리코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였습니다. 독재정권은 노인을 체포해 감옥에 넣고, 가장 잔인한 형벌을 내렸습니다. '음식물 투입 금지'.. 노인은 감옥에서 서서히 굶어 죽어갔습니다. 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연락을 받은 딸은 해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무거운 몸으로 감옥으로 갔습니다. 아버지의 임종을 보기 위해서였지요.

그리고 아버지를 본 순간...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눈에 핏발이 섰습니다. 굶어 돌아가시는 아버지 앞에서, 마지막 숨을 헐떡이는 아버지 앞에서 무엇이 부끄러운가... 여인은 아버지를 위해 가슴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불은 젖을 아버지의 입에 물렸습니다.

이 '노인과 여인' 그림은... 부녀간의 사랑과 헌신, 그리고 애국심이 담긴 숭고한 작품입니다. 푸에르토리코인들은 이 그림을 민족혼이 담긴 '최고의 예술품'으로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그림을 놓고 어떤 사람은 '포르노'라고 비하하기도 하고, '성화'라고 격찬하기도 합니다. '노인과 여인'에 깃든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비난을 서슴지 않지만.. 그러나 그림 속에 담긴 본질을 알고 나면 눈물을 글썽이며 명화를 감상합니다.

사람들은 가끔 진실을 알지도 못하면서 단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남을 비난하곤 하지요. 그러나 진실을 알면 시각이 확 바뀔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실과 진실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니까요. 눈에 속지 말고, 귀에 속지 말며 생각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푸에르토리코가 자체가 수백년간 스페인의 식민지였다가 근세에 와서 미국으로 통치권이 넘어간 터라, '국왕'이라는 개념이 있지도 않았구요. 푸에르토리코를 미국에서 독립시키자는 정치적인 움직임이 1900년대부터 있긴 했으나 그걸 가지고 1500년대 화가인 루벤스가 그림을 그리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그림이 푸에르토리코 국립박물관이 있다는 얘기도 거짓입니다. 현재 이 그림은 네덜란드 암스텔담 박물관의 바로크 작품 코너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 작품은 푸에르토리코 독립운동가의 감동적 일화를 소재로 푸에르토리코 사람이 그린 민족작품이 아니라, 중세 바로크 시대의 화가 루벤스의 작품입니다. 그림의 소재는 푸에르토리코의 역사를 소재로 한 것이 아니라 서기 30년 로마시대에 발레리우스 막시무스(Valerius Maximus)가 쓴 Facta et dicta memorabilia 에 실려있던 내용입니다. 이를 소재로 그림을 Caritas Romana 라고 부르는데, 르네상스 시대에 아주 장르처럼 유행을 해서, 구글 이미지에 검색을 해보시면 정말 다양한 그림을 보실 수 있습니다.

 

구글 이미지 검색 결과(카카오가 음란 이미지라고 해서 모자이크 처리합니다;;;)

 

 

아무튼 감동적을 위해 사실을 인위적으로 편집/왜곡한 사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는 이것을 사실로 믿고 감동 스토리로 여기 저기 퍼 날르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분들을 비난할 순 없습니다. 다만, 너무나도 감동적이고 앞뒤 스토리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는 현실에서 발생하기 어렵습니다. 드라마나 영화 작가가 정교하게 플롯을 구성하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이 벌어지기 어렵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감동적이다.... 그러면 일단 사실 여부를 의심해보는 것이 맞습니다.

 

인터넷(이젠 유튜브까지;;;)의 정보 파급력이 매우 높기 때문에 사실이 아닌 것들도 조금만 흥행성, 흥미성이 있으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게 됩니다. 

 

또다른 사례를 볼까요?

 

 

 

어느 독일인의 글

 

당신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지도를 펴기 바란다. 아마 당신이 알고 있을 중국과 일본 사이에 한반도가 있고 그 곳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보일 것이다. 이야기는 이 조그만 나라의 어느 마라토너가 중심에 있다.

이 나라는 지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무력에 의존하는 나라 사이에서 놀랍게도 2000 년간 한번도 자주성을 잃어본 적이 없는 기적에 가까운 나라이다. 그리고 이럴 경우 이 한국인들은 나라 대신에 '민족'이라는 표현을 쓰기를 좋아한다. 어느 여름 날 우연히 본 한장의 사진 때문에 나는 이 나라, 아니 이 민족의 굉장한 이야기에 빠져 들고 말았다.

무엇이 이 두 승리자들을 이런 슬픈 모습으로 시상대에 서게 했는가. 과거도 , 그리고 현재도 가장 인간적인 유교라는 종교가 지배하는 이 나라 아니 이 민족은 이웃한 일본인(죽음을 찬미하고 성에 탐닉하는)에 대해 ' 영리한 원숭이' 에 불과하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불행히도 이 인간적인 품위를 중시하는 자부심 강한 민족이 이 원숭이들에게 '강간' 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침략, 즉 식민지로 떨어지고 말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당시 대부분의 불행한 식민지의 청년들은 깊은 고뇌와 번민에 개인의 이상을 희생하고 말았고, '손' 과 '남' 이라고 하는 두 청년들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이 두 청년들은 달림으로써 아마도 자신들의 울분을 표출해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이 두 청년들은 많은 일본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마침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달렸을 것이다. 달리는 내내 이 두 청년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들은 승리했고 시상대에 오를 수 있었지만 그들의 가슴에는 조국, 한국의 태극기 (이 국기는 대부분의 나라의 그것이 혁명이라든가 투쟁이라든가 승리 또는 위대한 황제의 문양인데 비해 우주와 인간과 세상 모든 것의 질서와 조화를 의미한다) 대신에 핏빛 동그라미의 일장기가 있었고, 스탠드에 역시 이 핏빛 일장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이때 이 두 청년의 표정이란.... 그들은 깊게 고개를 숙인 채 .... 한 없이 부끄럽고 슬픈 얼굴을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뉴스를 전한 일본 검열하의 한국 신문 eastasia(동아일보를 말함)는 이 사진 속의 일장기를 지워버리고 만다.

이 유니크한 저항의 방법... 과연 높은 정신적인 종교 유교의 민족답지 않은가. 그런데 일본 정부는 이 신문사를 폐간시키고 만다. 이 우습고도 단순하면서 무지하기까지 한 탄압의 방법이란...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침내 이 민족은 해방되고 강요당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무서운 또 한 번의 전쟁을 치른 후, 한강의 기적(한국인들은 지구상에서 일본인들을 게을러 보이게 하는 유일한 민족이다)을 통해 스페인보다도 포르투갈보다도 더 강력한 경제적 부를 이루고 만다. 그리고는 1988 년 수도 서울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는데 이른다. 불과 50년 ... 태극기조차 가슴에 달 수 없었던 이 나라 아니 이 민족이 올림픽을 개최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개막식, 성화를 들고 경기장에 들어선 작고 여린 소녀 마라토너로부터 성화를 이어받은 사람은 그 날 너무나도 슬프고 부끄러웠던 승리자, "손" (손기정)이었다. 노인이 되어버린 이 슬픈 마라토너는 성화를 손에 든 채 마치 세 살 먹은 어린애와 같이 훨훨 나는 것처럼 즐거워하지 않는가!!

어느 연출가가 지시하지도 않았지만 역사란 이처럼 멋지고도 통쾌한 장면을 보여줄 수 있나 보다. 이 때 한국인 모두가 이 노인에게, 아니 어쩌면 한국인 개개인이 서로에게 얘기할 수 없었던 빚을 갚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극적이게도 서울 올림픽 도중에 일본 선수단은 슬픈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쓰러져 죽음을 기다리는 히로히토 일왕의 소식.... 한국인들의 종교 유교는 인간 , 심지어는 죽은 조상에게까지 예를 나타내는 종교이다. 이 종교의 보이지 않는 신이 인류 역사상(예수나 석가도 해내지 못한)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기를 바랬다. 이처럼 굉장한 이야기가 이대로 보존되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집념과 끈기, 그리고 폭력과 같은 단순함이 아닌 놀라운 정신력으로 그들이 50년 전 잃어버렸던 금메달을 되찾고 만 것이다.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4년 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황'이라고 하는 '손' 노인과 너무나 흡사한 외모의 젊은 마라토너가 몬주익 언덕에서 일본과 독일의 선수들을 따돌리고, 마침내 더 이상 슬프지 않은, 축제의 월계관을 따내고 만 것이다.

경기장에 태극기가 올라가자 이 '황' 은 기쁨의 눈물과 함께 왼쪽 가슴에 달린 태극기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는 스탠드로 달려가 비극의 마라토너 '손' 에게 자신의 금메달을 선사하곤 깊은 예의로서 존경을 표한다... '황' 을 가슴에 포옹한 '손' 은 말이 없다.

그럼으로써 그것이 비극적인 눈물로 시작된 역사일지라도 환희와 고귀한 기쁨의 눈물로 마감할 수 있는 것이다. 역사상 어느 민족도 보여주지 못했던 인간과 국가와 민족의 존엄을 이 한국인 아니 한국 민족이 보여주지 않는가.

도서관에 달려가라. 그리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대에 선 두 한국인의 사진을 찾아라... 당신은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간이 될 것이다..

- 슈테판 뮬러 (Stefan Müller) -

'슈테판 뮐러' 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 감동적인 독일인의 글. 그리고 이 독일인의 글을 소재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부연 설명을 하는 또다른 2차 저작물까지....

 

하지만 과연 그 글이 사실일까? 한 유명 드라마 동호회 게시판을 통해 nomodem 이라는 별명을 쓰는 이주석 님은 다음과 같이 그 글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이른바 '독일인 이야기'는 솔직히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글에서 저자가 '사실'로 적시한 부분이 '사실'이어야, 더 좋은 글일 수 있겠죠.

해당 글이 처음 인터넷에 등장하게 된 시기와 초기 퍼지게 된 근원지는,  KBS에서 제공하는 월드넷 독일 관련 컬럼 메뉴에 있는 모님의 컬럼란에 2001년 1월 초, '게르하르더슈뢰더'라는 이름의 독일인이 쓴 글이라며 소개가 된 것이 거의 원조(?)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그 글을 소개한 모님은 곧 그 글에 나타난 몇 개의 모순과 사실에 맞지 않는 점, 그리고 해당 원문이 애초에 독일어로 없다는 점, 해당 홈페이지 주소도 전혀 기재되어 있지 않은 점 등으로 곧 해당 글은 독일인이 짓지 않았을 수 있다고 덧붙였지만 이미 때는 늦어서, 다시 그 글은 '슈테판 뮐러'라는 이름의 저자로 이름이 바뀐 채, 2001년 10월 오히려 한글이 독일어 원문으로 번역(?)되어, 등장하게 되고, 다시 동아일보 2002년 11월 기사로 '작년 10월 어느 독일인이 해당 사이트에 올린 글'이라며 신문 독자들에게 소개가 나가게 되었습니다. 동아일보가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고 기사를 급하게 낸 까닭은 바로 글 속에 등장하는 신문이 '동아일보'였던 까닭이지요...

해당 페이지를 보시면 '독일어 원문'이라고 되어있는 글속에조차 '"eastasia" (steht fur "Dong-A Ilbo)' 라는 부분이 나올 정도인데 말이죠. 이거 하나만으로도 누군가가 원문을 '나중에 번역으로 만들었음'을 알았을 텐데 그쪽은 교정 과정이 거기까지는 가지 않나봅니다.

신문에 기사로 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진실로 입증되는 것이 아니며, 작자가 누군지 알기 어렵다고 해서 모든 것이 '허위'일 수는 없습니다. 생각 한 번 더 해보기에 앞서, 카피 앤 페이스트만을 불태우며 달려가는 것보다는 한 번 정도는, 그냥 그런 글들의 의도에 대해서 공감해주기 전에, 무언가 잘못되었거나 바로 잡아야 할 것이 없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내의 헌신이 만든 발명품

 

자, 마지막 사례를 하나 더 적어보겠습니다. 이 글을 적게 된 계기이기도 하죠.

 

네이버에서 '조지스티븐슨 아내'로 검색하면, "아내의 헌신이 만든 발명품" 이라는 감동 일화가 수두룩하게 나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1813년 인류 최초로 증기기관차가 달렸습니다. 이 증기기관차는 영국의 발명가인 조지 스티븐슨의 땀과 눈물이 담긴 작품이었습니다.

그는 탄광 마을의 극빈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는 소를 키우는 일을 하다가 14살 때부터는 광산에서 일하며 고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광산의 기관사로 일하면서 쉬는 날이면 엔진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엔진을 분해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갱(坑) 안에서 석탄을 꺼내는 방법으로 증기기관차를 생각해냈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숫자와 글자를 알아야 했습니다. 그런 그의 연구를 실현해주기 위해 아내는 헌신적으로 글자와 셈법을 가르쳐 주었고 누구보다 남편을 곁에서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증기기관차를 세계 최초로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철로 위를 달리게 된 증기기관차를 보지 못한 채 그의 아내는 폐결핵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흰 연기를 뿜으며 기관차가 달리던 날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의 꿈이 달리고 있다오."

 

딱 봐도 스토리가 너무 완벽하지 않나요? 실화가 이렇게 앞뒤 딱딱 맞아 떨어지며 감동적일 수가!! 이럴 때는 일단 의심부터 하고 봐야 됩니다. 

 

먼저, 스티븐슨이 글을 몰랐던 것은 사실이나 아내와 결혼을 한 후(1802년, 21세)에 아내로부터 배운 것이 아니라, Dewley 탄광에서 일하며 야간학교를 다니게 된 1799년(18세)에 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내는 스티븐슨이 25세 되던 해인 1806년에 폐결핵으로 사망합니다.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 후인 1811년(30세)이고 Killingworth 탄광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아내가 폐결핵으로 죽었다는 것과, 어릴 때 글을 몰라서 뒤늦게 배웠다는 사실을 소재 삼아서 감동적인 스토리라인을 만든 것이죠. 

 

사실, 아내와의 감동 일화는 어떤 역사적 문헌을 뒤져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 감동 일화가 등장한 계기는 한 출판사에서 만든 "역사 속 세기의 로맨스"라는 만화 전집입니다. 이 만화 전집 17권이 바로 조지 스티븐슨의 전기인데 위에서 읽었던 감동 일화가 등장합니다. 전집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팩트 몇 개를 소재로 하여 '로맨스'로 포장을 했을 가능성이 다분하죠. 

 

 

 

 

이렇듯,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많은 감동 실화들은 실화가 아니거나 흥행을 고려하여 각색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명한 밈처럼 현실은 시궁창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인터넷에 있는 말을 그대로 믿지 마라!

 

감동에 목마른 시대입니다. 현실이 팍팍해서 그런 걸까요. 감동적인 일은 적고, 그러니 감동적인 일을 만들어내어서라도 그 목마름을 충족시켜야 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감동과 그렇게 얻은 정서적 위안은 그저 나만의 정신승리 아닐까요? 가짜 감동에 반복적으로 취하다 보면 현실감각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들 너무 믿지 마시고 너무 감동하지 마시고 적당선에서 소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링컨의 유명한 어록을 소개하며 글을 마칠까 합니다.

 

"사진과 따옴표가 있다고 해서
인터넷에서 읽은 모든 것은 그대로 믿지 말아라."

- 아브라함 링컨 -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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