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서 쓴 '유산(遺産)'이라는 단어는 "남대문은 대한민국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라고 할 때의 그 '유산'입니다. 자동차 디자인에 무슨 유산이라는 표현까지 썼을까요? 제가 보통 짧은 정보성 글만 쓰는데, 오늘은 이 주제로 좀 긴 글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들을 포함하여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1. 난 여기에 꽂혔어!
예술하시는 분들은 일반인 보다 매니악한 특징이 강한 경향이 있습니다. 정말 하나만 파고드는 분들이 많아요. 그림을 놓고 보면, "물방울만 그리는 분", "점만 그리는 분", "선만 그리는 분", 조소 분야에서도 "인사하는 사람만 만드시는 분", "망치를 들고 있는 사람만 만드시는 분", "알 모양만 만드시는 분" 등..... 한 분야 혹은 하나의 소재에 집착하고 매달려서 거장이 되신 분이 많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백남준 씨도 '백남준' 하면 'TV 모니터'가 떠올려질 정도로 전형화된 이미지가 있잖아요.
사실 예술가가 어떤 경향에 천착하는 것은 과거부터 있어왔던 일입니다. 인상파니, 입체파니, 야수파, 낭만파니 하는 것도 다 똑같은 스타일로만 그리고 작곡하고 하니까 그런 분류까지 생긴 거잖아요.
더 나아가서 특정 예술가 단위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유행이 그런 결과를 만들기도 합니다. 도리아 양식, 이오니아 양식, 간다라 양식 모두 그 시대의 유행이었고, 그 시대의 예술가들이 그런 유행을 최고로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2. 검증된 걸로 안전하게 가는 거야.
또 다른 이유라기 보다는 첫번째 이유에서 이어지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창작을 했을 때 그 창작물이 너무나 맘에 들었고 대중의 반응도 좋다면, 다음 번 창작물도 완전히 원점/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기 보다는 과거의 창작물을 응용해서 하려는 경향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창작물 요소 중 일부 또는 전부가 정답을 반영하고 있었고, 그 정답이 대중에게 인정 받고 검증된 것이기에 그것을 재활용하는 것이 또 다시 좋은 결과물이 나옴과 동시에 대중으로부터 호평을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전하게 가는 것이죠. 이것은 절대 기회주의적인 것이 아니며, 지극히 합리적인 것입니다. 흥행배우가 영화나 드라마를 다작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그런 배우를 '흥행의 보증수표'라고도 부르는 것처럼, 한 번 성공한 창작물을 다방면으로 재활용하는 것은 예술이라고 해서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자동차 디자인도 예술이고 창작입니다. 디자이너들은 기능적인 요소의 반영과 함께 사람들의 심미적인 기준에 부합하거나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항상 창작의 고통 속에 새로운 자동차 디자인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대박을 낸다면? 그 디자인을 그 자동차에서 끝내고 새 자동차는 다시 원점에서 디자인을 하는 게 맞을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호평을 받은 요소가 무엇인지 분석하고 그 요소를 계속해서 계승해서 더 좋은 호평을 받기 위해 응용에 응용을 거듭하죠. 그래서 '패밀리 룩'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됩니다.
대표적을 BMW의 상징과도 같은 '키드니 그릴(자동차 앞부분에 있는 2개의 구멍)'은 1931년에 최초로 고안되었을 때는 현재와 같은 비중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호평의 이유를 분해하고 분석해서 조금씩 응용 발전시켜 온 것이 1987년에서야 지금과 같은 형태로 정착이 된 것입니다. ('키드니 크릴'에 대한 BMW의 공식 안내 페이지 보기)
한 번 검증된 디자인을 다음 버전 혹은 다른 제품에 계승하여 사용하게 된다? 이 말은 이전 디자인이 다음 디자인에 유산처럼 물려진다는 뜻이 됩니다. 앞으로 이 글에서는 우리가 친숙한 자동차들의 디자인이 어떻게 유산처럼 이어져 가고 있는지를 살펴 보려고 합니다.
SM6의 유산과 QM6의 계승
르노삼성자동차의 중형차 라인업을 담당하고 있던 SM5의 망한 디자인으로 인한 선녀 효과가 아니더라도, SM6(혹은 탈리스만)의 디자인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구구절절 수식어를 달지 않아도 딱 보자마자 "차가운 도시 남자"를 떠올리게 하는 저 디자인은 정말 '정답'이었고, 사람들의 반응에 디자이너도 흥분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쩌다 어렵게 찾아낸 이 '정답'을 단발성으로 끝내버릴 디자이너는 없을 겁니다. 후속으로 준비 중이던 SUV 차량에 SM6의 디자인 요소를 '응용' 정도가 아니라, 그대로 옮겨놓는 과감한 시도를 합니다.
QM6는 그저 차고가 높아진 SM6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말 똑같은 디자인을 적용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
사실 상당히 위험할 수도 있는 시도였습니다. 새로운 디자인이 없었으니까요. 그만큼 SM6 디자인이 완벽했다, 열일했다고 밖엔 말할 수 없군요.
현대자동차의 3세대 싼타페(DM)도 비슷한 시도를 했다면 어땠을까요? 이번에는 세단에서 SUV로 디자인을 계승하는 게 아니라, SUV에서 세단으로 계승하는 것이죠. 싼타페 DM의 외관과 동일한 세단?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위의 싼타페 DM의 전면부를 그대로 복사해서 아반떼에 붙여 보았습니다. 한 번 보실까요?
QM6와 SM6 처럼 그럴듯한 닮은 꼴 같지 않으세요? ^ㅅ^
다음 글에서는 다른 차들은 어떤 유산이 계승되고 있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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